폴 오스터, 달의 궁전

책 :: 걷기 2005. 8. 15. 12:09
내가 누군가에게 읽힐 수 있는 문장이라면
예전의 나는 대충 이런 모습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일단 그런 것들에 대해서 생각하기 시작하자 역겨운 느낌이 치밀어 올랐다. 그것은 갑작스럽고 무의식적인 반응, 급격하게 솟구치는 메스꺼움이었다. 나는 내가 그런 것들을 조금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그것을 모두 거부했다. 내가 위기를 넘기고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을 고의로 버린다는 것을 익히 알면서도 완강하게, 경멸하듯 그런 것들을 거부했다. 그때부터 나는 실제로 나 자신을 돕기 위해 아무 일도 하지 않았고 손가락 하나 꼼짝하려고 들지 않았다. 내가 왜 그런 짓을 했는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그 당시에 나는 셀수도 없이 많은 이유를 꾸며 냈지만, 결국 따지고 보면 그것은 절망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는 절망감에 빠져 있었고, 그처럼 큰 격변에 직면해서 어떤 극적인 행동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나는 세상에 침을 뱉고 싶었다. 할 수 있는 가장 무모한 짓을 하고 싶었다. 생각을 너무 많이 하고 너무 많은 책을 읽은 젊은이의 모든 열정과 이상으로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이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이라고 결정했다. 내 행동은 여하한 행동도 취하지 않으려는 투쟁적인 거부로 이루어질 것이다. 그것은 심미적인 목적으로까지 고양된 허무주의였다. 나는 내 삶을 예술 작품으로 만들 셈이었다. 절묘한 패로독스로 나 자신을 희생시킴으로써 내가 들이쉬는 모든 숨결로 나 자신의 운명을 음미하는 법을 배울 셈이었다.-폴 오스터, 달의 궁전 중에서


그런 우스운 어린 시절로부터
참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지금의 나는 자라고 있는 것일까 ?
나는 변화하고 있는 것일까 ?

숙취인지, 밤샘의 곤함인지 잘 모르겠지만
멍한 상태에서 폴 오스터, 달의 궁전을 뽑아들고
한 장 한 장 읽어 나갔다.

폴 오스터의 출간된 책은 다 읽은 것 같은데
그 내용이 조금도 기억나지 않는다는 것이 신기하다.

나는 한 번 읽고 두 번 읽을 필요가 없는 책을 잘 버리는 편인데,
두 번 읽을 필요가 없는 책은 한 번도 읽을 필요가 없다는 말에도 동의한다.

아무튼 나는 이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정리정돈이 필요한 것 같다.
내 주위의 모든 것,
내 주변에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한
정리정돈이 필요한 것 같다.

나는 자라고 있는 것일까 ?
나는 변화하고 있는 것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