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 냥이, 미미

생각 :: 生覺_살면서 깨닫다 2002. 2. 24. 02:07
무더운 여름날, 아버지는 난닝구만 입고 무언가 열심히 만들고 계시고
저는 옆에서 톱밥을 조물락대며 놀고 있었죠.
무식하다 싶을 만큼 커다란 건전지를 칭칭 묶어놓은 라디오에선
아마 소방차의 노래가 나오던 것 같아요.

뜨거운 여름볕에도 아랑곳하지않고 노래를 흥얼대며 놀고 있는데
웬 작은 냥이 한마리가 냥냥거리며 들어 오는겁니다.
하얀 바탕에 아주 옅은 회색 무늬가 있는, 왜 팬시 사진에도 쉽게 볼 수 있는 그런 놈 말이에요.
근데 이 놈이 내가 한참을 겁주고 을러대도 도무지 제 곁을 떠나지 않는 겁니다. 아버지께서는 한참을 어수선 떨며 덩달아 냥냥대던 제가 우스웠는지, 목에 걸린 수건으로 땀을 쓱 닦으시며 말씀하셨죠.

'그놈이 우리집에서 살려고 온 놈인가보다'

그때부터 같이 살게 되었어요~ 그 이름은 미미 !!! (꼭 트롯 같다 ~ ^^)
미미는 꼬마 웅~에게 갖은 시달림을 당하고도 도둑냥이 답지 않은 빼어난 미모를 자랑하며 자랐습니다. 비비탄 총이 빈 총인지 아닌지 알아맞추기라든가(미미가 맞추는 퀴즈였죠), 옆 집 개랑 싸워서 이길 수 있는지 없는지 같은 것들 ...
그러다 아이가 없는 꼽추 부부가 운영하는 빵가게에 가게 되었습니다.
냥이가 너무 이뻐서 아이 대신 키우고 싶다던 그 집으로 간 후
미미의 팔자는 볼 만해졌죠.
개인 방에 개인 장난감 ... 나중엔 멋진 신랑감과 아이들.
빵집이 없어진 후로 다신 미미를 볼 수 없었구요.

오늘 낮에 도서관 앞 길을 산책하다 도둑냥이를 보고
'천하장사 쏘세지'를 사가지고 주려고 했습니다.
스노우 캣 쥔장도 그랬다고 해서 해보았더니 역시나 도망가더군요.
결국은 웅이가 냠냠 ~
쏘세지를 먹으며 앉아 있다보니 갑자기 그 옛날 미미가 떠오르더군요.
그때 쫌 더 잘해줄 껄 하고 ...

('하늘을 나는 물고기'에서 추억을 꾸적대다 여기다도 옮기네요
전 굴림체가 편해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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