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해, 경운기를 보내며 중에

생각 :: 生覺_살면서 깨닫다 2019. 8. 2. 08:01

11월의 저문녘에

낡아빠진 경운기 앞에 돗자리를 깔고

우리 동네 김씨가 절을 하고 계신다

밭에서 딴 사과 네 알 감 다섯 개

막걸리와 고추 장아찌 한 그릇을 차려놓고

조상님께 무릎 꿇듯 큰절을 하신다  

나도 따라 절을 하고 막걸리를 마신다   


23년을 고쳐 써온 경운기 한 대   


야가 그 긴 세월 열세 마지기 논밭을 다 갈고  

그 많은 짐을 싣고 나랑 같이 늙어왔네그려  

덕분에 자식들 학교 보내고 결혼시키고 

고맙네 먼저 가소 고생 많이 하셨네  

김씨는 경운기에 막걸리 한 잔을 따라준 뒤  

폐차장을 향해서 붉은 노을 속으로 떠나간다   


-박노해 시인, '경운기를 보내며' 중에


우리 모두 

함께한 세월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