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제목이라는 것은 언제나 부담스럽다. 그냥저냥 주절대는 글이나 성심성의껏 진을 빼내두 마찬가지일게다.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이 어떤 말을 하고 있는지 정확히 모르기 때문일 수도 있겠고, 제목이라는 것이 대체 어떤 것인지조차 모르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내가 알기로는 작가라고 이름 붙은 이들중에도 자신이 어떤 말을 하는지,하고 싶은지 모르는 인간은 넘쳐난다.

그 부담스러운 제목이라는 것에 '삶 || 죽음'이라는 거창한 말을 떡하니 써놓은 것은, 입력폼에 '제목'이라는 빈 칸이 있기 때문이다. 별다른 의미가 있을 턱이 없다. 꼬물락꼬물락대는 중인데 뭘 ^^

종교적인 생각을 배제하고 '죽음'에 대한 첫기억을 떠올리면,생라면과 연관되어있다. 우리 또래가 어렸을 때, 그 무렵 꼬마들중 생라면을 싫어하는 놈들은 드물었을 것이다. 무슨무슨 분식바람이 불어서 저녁 한 때 라면을 끓여 먹자는 운동두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끓여먹든 부숴먹든 라면은 꼬마들에게 즐거운 먹거리였다.
어린 웅~은 엄마의 소중한 저녁먹거리를 슬쩍 앱쳐-_-? 작업에 들어간다. 일단 힘이 딸리니 팔꿈치루 부수었겠지, 지금은 살짝 쥐어두 부숴진다. 봉투 위쪽만 뜯어야 돼~ 편하게 앉아 먹기에는 빨빨 거리구 다닐 곳이 많아~ 잘근잘근 한 입에 먹기 좋을 만큼 으깬다음 스프를 살살 뿌려 흔든 후 봉투를 옆에 차고 마실 나간다. 오~ 저 녀석두 한 봉다리 차구 나왔군 ... 우리 조용한 데 가서 으찌니쌈이나 하자 ~
뭐 이런 스토리인데 일단 문제는 컴백홈후 발생한다.
요새처럼 넉넉치 않으니 가족들 찬 밥 말아 저녁 먹을 만큼만 봉지수 맞춰 사오는 것이 큰 문제다. 똘망똘망한 아들놈이 먹고 살겠다고 저러는 걸 심하게 나무랄 수는 없고 조 놈 버르장머리는 고쳐야겠고 ...

엄마 : (그냥 지나치는 투로,하지만 큰 소리로) 뉴스에서 봤는데 라면 삶지 않고 그냥 부숴먹으면 스프가 독해서 죽게된데~

아빠 : (알았다는 투로,역시 큰 소리로) 그~으~래 ~~ ?

이거 큰일났다. 나 죽게 생겼다. 어린 웅~은 담요를 싸고 웅크린 채 심한 오한에 떨구 있었다. 죽으면 어떻게 되는 걸까 ? 이렇게 생각하는 거 ... 내가 없어지는 건가 ? 이리저리 생각할 수 있는 이 머리통이, 내가 영영없어지는 건가 ? 아주 영원히 ? 다시 돌아오지도 않고 ?
무지 무서워하고 있었다.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다 가족들에게 인사를 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저 자구나면 죽어요. 잘 계시구요 ... 이런 식으로 가족들에게 돌아가며 마음속으로 인사를 마쳤다. 어린 웅~은, 9시 어린이는 잠자리에 들어야 착하다는 방송까지 무사히 들은 후 죽을 채비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었다.

'노인들께 전형적으로 보이는 불안증상,우울증이십니다. 그걸루 인해서 전체적인 근육통이 오셨구요'라는 의사의 말을 듣고, 종교적인 믿음을 떠난 생명체의 근원적인 공포에 대해 생각하고 있습니다. 죽음에 대한 공포말이죠. 한평생 저리 강건하게 사신 분이, 아직도 저렇게 명확하신 분은 드물겠다 여겨지는 분을 바라보며, 사람 살고 죽는 것에 대해 하나씩 더 느끼고 배우고 있습니다.

삶과 죽음이 전혀 이면적인 것이 아닌 같은 선상의 다른 모습일진데,죽음을 당당히 맞이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

'태어나기 전이 두려운가? 죽음은 태어나기 전으로 돌아가는 것인데 무엇이 두려운가?'

'죽음은 누구에게도 듣지 못한 새로운 길이다. 이런 새로운 모험에 들어 갈텐데 어찌 신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살아서 죽은 상태, 죽어서 살은 상태가 사람들이 바라는 것이라면 그건 준비된 사람들만의 길인가 ?

단 한 번만 주어진 이 삶이라면 계속 이렇게 살아도 좋은 것인가 ?

흙으로 돌아간다는 말처럼 흙으로, 나무로,하늘로, 그 하나하나의 알갱이로 진화하여 ... 풍요로워지는 '나'는 과연 '나'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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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콧 니어링의 생애와 사상
완전하고 조화로운 삶을 찾아서

영화 '생활의 발견'에서 추상미가 김상경에게 '어느 한 사람의 삶을 바꿔 놓았죠'하며 아는 척을 하던 장면을 기억하시는지 ... 그때 김상경의 손에 들려있던 스콧 니어링 자서전을 보고 아~ 저 책, 했습니다. 웬 노인 얼굴이 있고 뭐하는 사람인지 모르던 무지한 웅~은 '뭐 세상에 널린 게 위인이고 전기이고, 알지도 못하는 책 읽을 시간이 없지'하며 지나치던 것이거든요.

'삶을 바꿔 놓았다 !' 뭐 이런 말 들으면 궁금하잖아요. 대체 뭐하던 냥반이기에 책 하나로 다른 사람 삶을 지 맘대로 바꿔 ~ !!! 해서 읽어 보았습니다. 가히 바꿔 놓을만 합니다. ^^ 책을 참 좋게 읽어 낼름 원서를 주문한 웅~, 요새 영어와의 전쟁을 선포했기에 즐겁게 보고 있습니다.

아래는 실천문학사에서 나온 '스콧 니어링 자서전'중에 실린 것을 옮겼습니다. 진 헤이가 1997년에 발표한 '자유언론을 위한 개인적 희생'을 참고로 해서 소설가 김영현님이 정리한 것이라 합니다.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구입해서 읽어 보시면 좋을 듯해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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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콧 니어링은 1883년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에 있는 한 탄광 도시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그로부터 꼭 1 백 년 뒤인 1983년 메인 주 하버사이드에서 페놉스콧만을 바라보며 눈을 감았다. 그는 인생의 가장 정점에 이른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지극히 평화로운 죽음을 맞이했다. 철저한 채식주의와 검약이 몸에 밴 그는 백 살이 되자 지상에서의 자신의 임무를 마감하고 스스로 곡기를 끊었던 것이다. 그것은 은둔과 노동, 절제와 겸손, 그리고 무엇보다 삶의 분명한 원칙을 가지고 있는 사람만이 맞이할 수 있는 그런 죽음이었다. 그는 1백 년의 짧지 않은 기간 동안 가장 완전하고 조화로운 삶을 산 사람이었다. 성인이 아니면서 그런 완전한 삶을 산 사람들은 아마 드물 것이다.

그러나 결코 그의 삶이 순탄했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정확히 말하자면 오히려 그 반대였다. 그가 살았던 1백 년 동안은 여러 면에서 현대사회가 격변을 겪은 시기였다. 젊은 시절 그는 열정적인 사회개혁가였고, 자유주의자이자 진정한 의미에서 공산주의자였다. 에디슨이 새로운 발명으로 세상을 놀라게 하던 시기에 어린 시절을 보냈는데 중년이 되기도 전에 이미 그 발명품들은 일상생활에서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다. 그 시기는 혁명과 전쟁의 시대이기도 했다.

1917년 러시아혁명이 일어나자 니어링은 흥분하였으나 두 번의 세계대전을 치르는 동안 죽어가는 수백만의 민간인과 병사들을 보고 절망을 느꼈다. 근본적으로 평화주의자인 그는 전쟁의 광기에 대해 강한 목소리로 비판하였다. 그 때문에 그는 재판정에까지 서지 않을 수 없었다. 일찍이 그는 기회 있을 때마다 중요한 사회, 경제, 정치적 문제에 대해 분명하게 자기 의견을 피력하곤 했는데 그러한 문제들이 사회 전반에 널리 인식되기 위해서는 한참 시간이 흘러가야 했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 그는 미국에서 가장 위대한 개인적 자유의 수호자, 자본주의로 상징되는 문명 전반에 대한 근본적 비판을 가한 사회철학자이자, 자연주의자, 실천적인 생태론자가 되었다.

일찍부터 그가 가진 관심의 영역과 통찰력은 지금 생각해도 놀라운 것들이 많다. 예를 들자면 스콧 니어링이 1911년 '아동노동문제의 해결책'을 출간했을 때만 해도 아동노동문제에 대해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뿐만 아니라 여성들에게 선거권이 부여되지 않았던 1912년에 '여성과 사회진보'를 출간하여 여성들의 사회참여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1917년 미국이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려 할 때 니어링은 '거대한 광기'라는 책을 출간했는데 여기에서 그는 전쟁 기계를 움직이는 역학관계를 상세히 묘사했으며 징집법안을 "비미국적"이며 "헌법정신과 미국의 전통에 명백히 위반되는 법안"이라고 비난했었다. 1923년 니어링이 "석유, 전쟁의 씨앗"을 발간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둘 사이의 관계를 인식하지 못했지만 그후 60년 지나 발발한 걸프전은 그의 통찰력이 옳았다는 것을 증명해 주었다.

1929년 스콧 니어링은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현실에 대한 책을 많이 저술하였는데 '블랙 아메리카'는 미국내에서 흑인들이 당하는 폭력을 생생히 묘사한 글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미국에서는 흑인을 니그로 등의 경멸적인 호칭으로 부르던 시기였으며 그러한 폭력사건은 별로 중요하지 않은 기삿거리로 다루어지던 때였다. 또한 1933년 니어링은 '파시즘'을 저술했는데 그는 이 책에서 파시즘을 제약없는 자본주의의 한 형태로 생각했으며 세상에 대한 첫번째 경고라고 말했다.

이러한 선구자적 생각과 단호한 태도 때문에 그는 큰 대가를 치러야 했다. 자신의 생각을 조금도 굽힘이 없이 설파했던 니어링은 두 대학의 교수직에서 쫓겨났다. 순회강연 요청도 끊겨버렸다. 국가에서도 그를 위험인물로 분류하여 1916년 법무성이 그의 원고를 압수하였는데 이때는 FBI가 창설되기도 전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1차세계대전에 반대하는 반전운동을 주도했던 행적 때문에 스파이 활동혐의로 기소되기까지 했다.

모든 학문적 강의는 중단되었지만 니어링은 뉴욕시에서 열린 미국 사회과학학회에서 주최한 랜드 스쿨 반전사회과학학회에 회원으로 참여했으며 '거대한 광기'를 포함해서 수편의 반전논문을 학회지에 발표하였다.

같은 때에 니어링은 시회당에 가입했는데 1918년에는 현직의원 피오렐로 라 가르디아에 맞서서 선거에도 출마하였다. 후보자는 단 두 명뿐이었는데 사회당의 높아가는 인기에 위협을 느낀 민주당과 공화당이 피오렐로 라 가르디아를 연합공천 했기 때문이었다.

그 당시에는 전쟁에 반대하는 말을 하거나 글을 쓰는 사람들은 기소되어 재판을 받는 것이 다반사였다. 신문사들은 탄압을 받았고 사무실이 불시에 수색을 당하고 우편물이 검열되었다.국외로 추방되는 사람들도 생겼다. 뉴욕 시는 전쟁에 반대하는 시위에 가담했던 사람들을 투옥하였는데 그 수가 너무 많아서 블랙웰 섬의 교도소에 사회당 강령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뉴욕 콜'지가 풍자했을 정도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치 유세장은 공공토론과 투쟁에 있어 가장 좋은 장소가 되었다.

후보지명 수락연설에서 니어링은 현 민주당 정부가 스파이법 등의 법률을 만들어 헌법에서 보장된 권리들을 제한하고 부정하는 것에 반대하여 의회에 진출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때 니어링 자신이 이미 스파이 법을 위반한 혐의로 연방법원에 기소되어 있는 상태였다. 당국이 제출한 유일한 증거는 그가 쓴 논문 '거대한 광기'하나뿐이었다. 출판사와 랜드 스쿨도 그 논문을 출간한 혐의로 함께 기소되었다.

미국노동연감(1919~20)에 의하면 한창 전쟁중이던 1917년 4월에서 1918년 11월까지 미국 내에서 언론, 출판, 집회의 자유와 관련하여 기소된 사람은 모두 4천 5백여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1천 5백 명 정도가 유죄 판결을 받아 투옥되었는데, 그 중 9백 98명이 스파이 죄였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진짜 간첩 중에서는 스파이 법에 의해 처벌받은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대신 미국 정부는 자국 내의 수많은 급진주의자와 평화주의자들을 이 법에 의해 감옥으로 보냈던 것이다.

1918년 11월 선거에서 니어링은 1만4천5백23 대 6천 2 백 14로 가르디아에게 패했다. 그로부터 석 달 후에 스파이 혐의에 대한 재판이 열렸다. 이 재판은 1919년 2월 6일에서 2월 19일까지 열렸는데 니어링은 많은 기자들로 가득 찬 이 재판이야말로 자본주의에 반대하고 사회주의를 옹호하며, 전쟁에 반대하고 평화를 추구하는 자신의 생각을 피력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생각했다. 그는 모든 사실을 순순히 시인했으며 '거대한 광기'의 모든 내용이 자기의 생각과 일치함을 인정했다. 최후진술에서 니어링은 열정에 찬 목소리로, 그리고 매우 감동적인 목소리로, 자신의 믿음과 철학에 대해 말했다.

" ...... 여러분, 나는 징병 및 등록업무를 방해하고 불복종과 불충성, 반란 및 전쟁의무이행을 거부했다는 혐의로 재판에 회부되어 여러분 앞에 섰습니다. 하지만 검찰측은 내가 징병업무를 방해했으며, 의무이행의 거부, 불복종, 반란 등의 혐의에 대한 어떠한 구체적인 증거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검찰측이 증거로 제시한 논문 '거대한 광기'는 발간된 지 17 ~ 18 개월이나 되었고 그 동안 약 1만 9천 부가 배포되었지만 실제로 검찰측이 주장하는 일이 발생한 사례는 한 건도 보고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나에게 적용될 수 있는 법규는 내가 내 의견을 발표했다는 사실, 즉 내가 이 책을 쓴 것과 사회당 강령에 대한 세인트루이스 선언에서 내가 내 의견을 발표한 것에 대해 적용될 수 있을 뿐입니다. 즉, 나는 책을 쓰고 그 책을 출판사에 보내어 출간되게 한 죄로 기소된 것입니다. 따라서 내가 유죄라면 그것은 내가 내 자신의 의견을 발표한 것이 유죄가 되는 것입니다. 나의 의견 외에는 증거가 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

나는 민주주의가 귀족정치나 독재정치 등의 다른 정부형태보다 훨씬 뛰어난 제도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토론은 민주주의의 한 수단이라 할 수 있습니다. 민주주의는 사람들이 문제점에 대해 생각하고 그것을 자유롭게 토론하여 결론에 도달하고 그 결론을 자유롭게 발표하게 하는 수단입니다. 토론을 통해서만 합리적인 공공의 의견에 도달할 수 있으며 토론이 제한되는 순간 민주주의는 파괴되는 것입니다. 민주주의를 유지하는 유일한 방법은 모든 시민들에게 그들의 신념을 발표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것입니다. 이 권리는 올바른 신념을 가질 수 있는 권리와 올바르지 못한 신념을 가질 수 있는 권리를 동시에 포함하는 것입니다. 헌법은 시민들이 바른 생각을 할 수 있는 권리만 보장하는 것은 아니며 자기가 정직하다면 잘못된 생각이라도 할 수 있는 권리까지 보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이 논문에서 발표한 견해는 내 자신의 의견을 정직하게 표현한 것입니다. 나는 이 견해들이 옳다고 믿습니다. 나의 견해가 옳은지 그렇지 않은지는 미래가 밝혀줄 것입니다. 이 나라의 모든 시민은 자신을 표현할 권리를 가지고 있으며 법률이 허용하는 한도에서는 어떤 주제라도 자기가 가지고 있는 의문에 대한 견해를 발표할 수 있습니다. 정부가 개입하여 이러한 권리를 제한한다면 그 순간 민주주의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나는 미국의 시민이며 나의 조상들은 2백 년 이상 이 나라에 살아왔습니다. 그러므로 미국 시민으로서 나는 권리와 의무를 가지고 있습니다. 미국 수정헌법에서는 시민들에게 자유로운 언론과 출판의 자유, 즉 내가 가지고 있는 믿음을 말하고, 출판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권리를 위해 우리의 선조들은 유럽을 떠나 이 땅으로 온 것입니다. 이러한 권리를 위해 많은 사람들이 현재도 싸우고 있습니다.

이러한 법이 무시된다면 이 나라의 번영은 나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자기의 생각과 의견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되고 우리 앞에 놓인 문제에 대해 자유롭게 토론할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되지 않는다면 지금 이 나라의 풍요는 어떤 의미도 가질 수 없습니다. 지금의 미국은 자유를 원합니다. 그리고 미국 시민으로서 이 자유야말로 그것을 위해 우리가 싸워야하는 가장 소중한 자산인 것입니다. 이 자유는 법률과 헌법에 의해 보장되는 것입니다. 설사 법률과 헌법이 없다 해도 이 자유는 민주사회의 일원에게 보장된 당연한 권리입니다.

나는 그 논문에서 미국의 자유, 그리고 전세계 모든 사람들의 친교를 위한 나의 희망, 나의 이상과 나의 포부를 표현했습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다 했으며 나머지는 여러분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 "

배심원이 판결을 내리는 데는 장장 30 시간이나 걸렸다. 그 결과 '거대한 광기'를 쓴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판결이 내려졌는데 그것으로 그는 당시에 이와 비슷한 전쟁 관련 혐의로 기소되어 무죄판결을 받은 유일한 급진주의자가 되었다. 하지만 이 책을 출간한 랜드 스쿨은 스파이 법 위반혐의가 인정되었다. 랜드 스쿨은 미국 대법원에 상고했으나 인정되지 않았다. 랜드 스쿨은 3천 달러의 벌금을 물었는데 모두 1달러짜리 지폐로 지불했다.

그후 니어링은 할 수 있는 한 글쓰기를 계속했으며 소규모 좌익그룹에 가입하기도 했다. 그리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강연을 가졌다. 그러나 니어링은 이미 사회로부터 위험분자, 과격분자를 몰려 소외당하고 있었다. 차츰 강연 요청도 끊겼으며 신문에 기고하는 글조차 거절당했다. 그는 직장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가족으로부터도 외면당했다. 안락한 중산층의 가정을 추구했던 그의 첫번째 아내인 넬리 시즈는 더 이상 니어링과 함께 살기를 원하지 않았다. 결국 그는 별거를 당하고 아이들로부터도 멀어졌다.

가족으로부터도 떨어진 니어링은 얼마되지 않는 연금에 의지하며 메인 주의 한 시골마을에서 살고 있었다. 일반 사회의 시각으로 보자면 실패한 인생의 전형처럼 보여지는 생활이었다. 그때 그의 곁에 인생을 완전히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힘을 가져다준 사람이 나타났다. 당시 마흔다섯 살이었던 니어링보다 스무 살이나 연하였던, 매력적인 여성 헬렌 노드(지금은 헬렌 니어링으로 더 잘 알려진)가 바로 그녀였다. 그녀는 그의 인생 후반부를 함께한 최고의 반려자이자 동지가 되었다.

헬렌은 좋은 가정에서 태어나 좋은 교육을 받았는데 특히 음악 분야에 대해서는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일찍이 인도 철학자 크리슈나무르티의 연인으로 그의 사상과 삶에 도취했던 헬렌은 이 보잘것없는 중년의 사내에게서 평범하면서도 비범한 지혜를 느꼈다. 니어링과의 만남은 그녀에게도 역시 생의 일대 전환점을 이루게 한 사건이었다. 그녀는 화려하고 유혹적인 문명적 생활을 포기하고 대신 니어링과 함께 버몬트 주의 숲속으로 들어가 농사를 지으며 단풍사탕을 만들어 파는 생활을 시작했다. 극도로 단순하고, 검약하고, 가난한 생활의 시작이었다.

1945년 8월 6일 그의 62번째 생일에 해리 트루먼 대통령은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투하하라는 명령을 내렸는데 그날 니어링은 트루만 대통령에게 이렇게 편지를 썼다.

"당신의 정부는 더 이상 나의 정부가 아닙니다."

니어링은 부인 헬렌과 함께 처음에는 버몬트에서 그리고 후에는 메인에서 농사를 지으며 자급자족적인 생활을 했고 겨울에 농장이 얼어붙어 농사를 지을 수 없으면 여행을 떠나고 강연을 하고 저술을 하며 지냈다. 스콧과 헬렌은 그들의 시골생활을 '조화로운 삶'에 소개했다. 그들은 또한 '단풍사탕 만드는 법'을 써냈는데 이 책은 그 주제를 다룬 첫번째 책이자 아직도 유일한 책이다.

이 두 권의 책은 1950년과 1954년에 자비로 출판되었는데 베트남전쟁 와중인 1970년에 랜덤 하우스에서 재출간되었다. 이 책들의 내용은 반전운동을 하던 당시의 젊은이들의 욕구에 맞아 떨어졌고 니어링 부부는 미국의 우상이 되었는데 이러한 상황은 이 부부에게는 매우 어색한 것이다.

1970, 80 년대가 되자 그의 이름은 차차 사람들 속에 알려져 수많은 사람들이 호숫가 니어링 부부가 손수 지은 돌집과 그들의 생활을 보러 찾아오곤 했다. 그들의 눈에는 스콧 니어링이 가난하지만 아무것도 부러워하지 않는 사람으로, 명석한 몽상가로, 개인적 희생을 개의치 않고 원칙을 지키는 사람으로 비쳐졌다. 많은 사람들은 그가 숲에서 살게 되기까지는 무언가 특별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짐작은 했지만 그의 '화려한 과거'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사실 그의 생애 전반부에 행해졌던 열정적인 사회활동은 이제 거의 잊혀져 가고 있었기 때문에 스콧과 헬렌이 죽은 뒤 세워진 '굿 라이프 센터'의 간부들조차 정관을 작성하면서 그의 환경운동이나 정신적, 전원생활적인 면뿐만 아니라 정치적 견해도 빠트리지 않고 정관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다시 한 번 확인을 해야 할 정도였다.

말년에 그는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다. 그러나 이 존경은 젊은 시절의 화려한 활동 때문이 아니었다. 새로운 추종자들이 그를 존경하게 된 것은 스콧과 그의 두번째 아내 헬렌이 숲속에서 행한 독특하고 절제된 생활방식 때문이었다. 그것은 일찍이 데이빗 소로우가 월렌 호수가에서 실현했던 생활과도 유사한 방식의 삶이었다. 이들을 모범삼아 수천 명의 젊은 이들이 도시를 떠나 농촌으로 돌아갔다.

이 젊은이들은 스콧 니어링이 걸어온 과거의 급진적인 행적을 알지 못했다. 또한 그들은 유기농장에서 감자밭을 가꾸는 이 주름지고 구부정한, 팔꿈치를 누덕누덕 기운 옷을 입은 괴팍한 노인이 금세기 초 버트란트 러셀과 클레런스 데로우에 버금가는 연설과 강연으로 수천 명을 흥분시켰던 명연설가였다는 사실을 상상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꾸준하고 인내심 있게 수동톱으로 산더미 같은 나뭇더미와 가지들을 16인치 크기로 잘라 부엌용 난로의 연료로 만드는 조그맣고 깐깐한 노인이 1917년 반전 논문을 발표하여 스파이 혐의로 기소되어 1919년 연방법정에 피고로 섰었다는 사실을 상상하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일 것이다.

1983년 8월 24일, 스콧 니어링은 부인 헬렌 니어링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화롭게 눈을 감았다. 그는 자신이 살아온 1백 년의 시간을 통해 우리 모두에게 진정한 자유가 무엇인지, 그리고 진정으로 의미있고 충만한 삶이 어떤 것인지를 실천적으로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의 메세지는 자본주의 소비문화가 극대화되면 될수록, 우리의 삶이 더욱 바빠지고 황폐해질수록, 더욱 강하게 되살아날 것이다.

1911년 그가 써놓은 좌우명에는 다음과 같이 씌어져 있다.

" ...... 간소하고 질서있는 생활을 할 것. 미리 계획을 세울 것. 일관성을 유지할 것. 꼭 필요하지 않은 일은 멀리할 것. 되도록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할 것. 그날그날 자연과 사람 사이의 가치있는 만남을 이루어가고, 노동으로 생계를 세울 것. 자료를 모으고 체계를 세울 것. 연구에 온 힘을 쏟고 방향성을 지킬 것. 쓰고 강연하며 가르칠 것. 원초적이고 우주적인 힘에 대한 이해를 넓힐 것. 계속해서 배우고 익혀 점차 통일되고 원만하며, 균형잡힌 인격체를 완성할 것 ......"
저자의 죽음

- 아래는 개인적인 필요로 '롤랑 바르트 전집 12, 김희영 편역'중에서 타이핑한 것입니다. 문제가 된다면 삭제합니다.

- 이 글은 1968 년 '망테이아'지에 발표된 것으로 '언어의 살랑거림'에 재수록되었다.

발자크는 그의 중편소설 '사라진느'에서 여자로 가장한 한 거세된 자에 대해 말하며, 이런 문장을 쓰고 있다. '그녀의 갑작스런 두려움, 그녀의 이유 없는 변덕, 그녀의 본능적인 불안, 그녀의 까닭 모를 대담함, 그녀의 허세, 그녀의 섬세하고도 부드러운 감수성, 그것은 분명 여자였다.'1)누가 이렇게 말하는가 ? 그것은 여자 아래 감추어진 그 거세된 자를 모르는 척하고자 하는 소설의 주인공인가 ? 아니면 자신의 개인적 체험에 의해 여성에 대한 한 철학을 가지게 된 개인 발자크인가 ? 또는 여성성에 대한 "문학적" 관념을 언명하는 저자 발자크인가 ? 보편적 지혜인가 ? 낭만적 심리학인가 ? 그것을 안다는 것은 영원히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글쓰기란 모든 목소리, 모든 기원의 파괴이기 때문이다. 글쓰기는 우리의 주체가 도주해 버린 그 중성, 그 복합체, 그 간접적인 것, 즉 글을 쓰는 육체의 정체성에서 출발하여 모든 정체성이 상실되는 '음화'2)이다.

아마도 그것은 항상 그래왔던 것 같다. 하나의 사실이 현실에 직접 작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동사적인 목적으로 이야기되기만 하면, 다시 말해 상징을 실천하는 것 외에 다른 어떤 기능도 가지지 아니하면, 그때 이런 분리가 나타난다. 목소리는 그 기원을 상실하고, 저자는 그 자신의 죽음으로 들어가며, 글쓰기가 시작된다. 그렇지만 이런 현상에 대한 감정은 매우 다양하게 나타났다. 민속학적인 사회에서의 이야기는 어떤 인간이 아닌, 엄밀히 말해 우리가 결코 그 '천재성'을 찬미하는 것이 아니라, 기껏해야 그 '언어 수행'(즉 서술적 약호의 지배)을 찬미하는 매개자, 샤먼, 낭송자에 의해 담당되어 왔다. 저자란 중세를 벗어나자마자 영국의 경험주의와 프랑스의 합리주의, 종교 개혁의 개인적인 신앙과 더불어 우리 사회가 개인의 명성을, 좀더 고상하게 말한다면 '인격'이라는 것을 발견한 후에 생산된 현대적인 인물이다. 그러므로 문학 안에서 저자의 '인간'에 최대의 중요성을 부여한 것이,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의 요약이자 귀결인 실증주의라는 것은 지극히 논리적이다. 저자는 아직도 문학사의 교과서나 작가의 전기, 잡지의 대담, 그리고 자신의 내적 일기에 의해 그들의 인간과 작품을 연결시키려는 문학가들의 의식 속에서도 여전히 지배적이다. 일반적인 문화 안에서 발견되는 문학의 이미지는 가차없이 저자, 그인간, 생애, 취향, 정념에 집중되어 있다. 비평 또한 대부분의 경우, 보들레르의 작품은 인간 보들레르의 실패이며, 고흐의 작품은 곧 그의 광기이며, 차이코프스키의 작품은 그의 악덕이라고 말한다. 이렇듯 작품의 설명은 언제나 작품을 만들어내 사람 쪽에서 모색되어 왔다. 마치 다소간에 투명한 허구의 알레고리를 통하여 거기에는 결국 언제나 하나의 유일하고도 동일한 사람의 목소리가, 자신의 '속내 이야기'를 털어 놓는 저자가 존재한다는 것처럼.

비록 저자의 제국이 아직도 무척 강력하기는 하지만 (신비평은 자주 그 제국을 공고히 했을 뿐이다), 벌써 오래 전부터 몇몇 작가들이 그것을 붕괴하려고 시도해 온 것은 자명하다. 프랑스에서는 아마도 말라르메가 그 첫번째일 것이다. 그는 지금까지 언어의 소유주라고 여겨져 왔던 자를 언어 자체로 대체할 필요성을 광범위하게 인식하고 예견했다. 그에게서 또 우리에게서도 마찬가지이지만, 말하는 것은 언어이지 저자가 아니다. 쓴다는 것은 선행적인 몰개성 - 사실주의 소설가들의 그 거세적인 객관성3)과는 결코 혼동될 수 없는-을 통하여 '자아'가 아닌, 오직 언어만이 작업하고 '수행하는' 바로 그 지점에 도달하고자 하는 것이다. 말라르메의 모든 시학은 글쓰기를 위해 저자를 제거하는 데에 있었다(뒤에서도 살펴보겠지만, 이것은 독자의 자리를 회복시키고자 함이다). 발레리는 자아의 심리학으로 인해 조금은 혼란한 상태에서 말라르메의 이론을 약화시키기는 하였지만, 그의 고전주의적 취향에 의해 수사학의 가르침을 준수하면서도 계속해서 저자를 의문시하고 조롱하였고, 자신의 활동의 언어학적이고도 '모험적인' 성격을 강조하였으며, 전 산문 저술을 통하여 문학의 본질적인 언술적 조건을 위해 투쟁하였다. 그 조건 앞에서 작가의 내재성에 대한 모든 의뢰는 순전히 미신적인 것으로 보였던 것이다. 프루스트 자신도 그의 분석이라 불리는 것의 외간상 심리적 성격에도 불구하고, 작가와 작중인물의 관계를 지극히 정교한 수법으로 가차없이 뒤섞어 놓는 일에 몰두하였다. 그는 화자를 보고 느끼고 쓰는 자가 아니라, 이제 글을 쓰려고 하는자로 만들었다(소설의 그 젊은이, 그런데 사실 그는 몇 살일까 ? 누구일까 ? 글을 쓰고 싶어하지만, 글을 쓸 수 없는 그. 그리고 소설은 드디어 글쓰기가 가능해질 때 끝이 난다). 프루스트는 현대적인 글쓰기에 그 서사시를 부여했다. 근본적인 뒤집음에 의해 그는 사람들이 자주 말하는 것처럼 그의 삶을 소설 속에 투여한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의 삶을 작품으로, 그가 쓰는 책이 그 작품의 모델이 되는 그러한 작품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샤를뤼가 몽테스키외를 모방한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일화적이고 역사적인 현실 속에서의 몽테스키외가 샤를뤼에서 파생된 2차적인 단편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4) 그리고 현대성의 선사시대라 할 수 있는 초현실주의에 국한시켜 생각해 보아도, 그것은 분명 언어에 최상의 자리를 부여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언어는 체계이나 이 운동이 목표로 하는 것은 낭만적이게도 - 게다가 환상적인, 왜냐하면 약호는 파괴될 수 없으며, 단지 '유희하는' 것만이 가능하므로 - 약호의 직접적인 전복이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초현실주의는 기대하던 의미를 갑작스레 좌절시킬 것을 권유하면서 (이것이 초현실주의의 저 유명한 '돌발 비약'이다), 머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것을 손에게 되도록 빨리 쓰게 하는 임무를 맡김으로써(이것이 자동기술이다), 또 여러 사람이 함께 쓰는 글쓰기의 체험과 원칙을 인정함으로써 저자의 이미지를 탈신성화하는 데 공헌하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문학 밖에서도(사실 이런 구별은 이제 낡은 것이다), 언어학이 언술 행위 전체가 대회자들이라는 인간에 의해 채워지지 않고서도 완벽하게 기능하는 하나의 텅 빈 과정이라는 것을 보여 주면서 저자의 파괴에 귀중한 분석 도구를 제공하기에 이른다. 언어학적으로 말한다면, 저자는 마치 나가 나라고 말하는 자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글을 쓰는 사람 외에 다른 아무것도 아니다. 언어는 '인간'이 아니 '주어'를 알 뿐이다. 그리고 이 주어는 그것을 명시하는 언술행위 자체를 떠나서는 텅 빈 것으로서, 언어를 '말하는 데에', 다시 말해 언어를 고갈시키는 데에 그친다.

저자의 멀어짐은(브레히트와 더불어 우리는 그것이 진정한 '거리두기'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문학적 무대 저 끝에 있는 단역 배우처럼 축소된다) 하나의 역사적 사실, 혹은 글쓰기의 행위만이 아니다. 그것은 현대적인 글쓰기를 완전히 변모시킨다(혹은 같은 말이기는 하지만 텍스트는 그 속에서, 그 모든 층위에서 저자가 부재하도록 만들어지고 읽혀진다). 우선 시간도 더 이상 같은 것이 아니다. 우리가 저자의 존재를 믿는 한 저자는 항상 그의 책의 과거로 간주되어 왔다. 책과 저자는 '전'과 '후'로 배열된 채 동일 선상에 위치한다. 저자는 책을 부양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다시 말해 책 이전에 존재하고, 책을 위해 생각하고, 괴로워하고, 살아가는 것으로. 그는 아버지와 자식의 관계에서처럼 자신의 작품과 선행적인 관계를 가진다. 이와 반대로 현대적인 필사자5)는 자신의 텍스트와 동시에 태어난다. 그는 자신의 글쓰기를 선행하거나 초과하는 존재를 어떤 방식으로든 갖고 있지 아니하며, 자신의 책이 술어가 되는 그런 책의 주어가 아니다. 거기에는 단지 언술행위의 시간만이 존재하며, 모든 텍스트는 영원히 지금 여기서 씌어진다. 사실인즉(혹은 그 결과), 쓴다는 것은 더 이상 기록, 확인, 재현, 묘사(고전주의자들이 말하는)의 조작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옥스퍼드 철학의 영향을 받은 언어학자들이 수행동사6)라고 부르는 것,정확히 말해 언술행위가 발화하는 행위 외에 어떤 내용(어떤 언표)도 가지지 아니하는, 그런 진귀한 언술적인 형태를 가르킨다.(전적으로 1인칭과 현재 시제로 주어지는). 그것은 뭔가 왕들의 '짐은 선언하노니', 혹은 고대 시인의 '나는 노래한다'와도 같다. 이렇게 저자를 매장하고 난 현대의 필사자는, 선배들의 비장한 관점에 따라 손이 사상이나 정념을 표현하기에는 너무 느리며, 그 결과 필요의 법칙을 만들어 이 느림을 강조하고, 또 자신의 형식을 무한히 '가다듬어야' 한다고는 믿을 수 없게 되었다. 반대로 그에게서 손은 모든 목소리로부터 차단된 채 단순한 기재의 몸짓에 이끌려 기원이 없는 장을 그려 나간다. 또는 적어도 언어라는 기원 외에는, 다시 말해 모든 기원을 끊임없이 문제시하는 언어 외에는 다른 어떤 기원도 가지지 아니한다.

1)여기에 나오는 일련의 수식어들은 전부 여성명사들로서, 그것을 한정하는 소유형용사 또한 여성이다. 따라서 이 소유형용사는 단순히 '그' 혹은 '그것의'로 풀이될 수 있지만, 계속해서 반복되는 이런 여성 소유형용사의 사용은 여성성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며, 따라서 이 글에서는 '그녀의'로 옮기고자 한다.
->읽던 자리로

2)여기서 바르트는 명암, 흑백 등이 피사체와는 반대가 되는 음화의 이미지를 통하여, 글쓰기 주체 안에서의 주체의 부재와 그 전복적인 양상을 말하고 있다.
->읽던 자리로

3)여기서 거세적이라고 옮긴 프랑스어의 castratrice는, 거세라는 1차적 의미에서 더 확대되어 신체의 다른 부위를 절단하거나 훼손시킨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거세적인 객관성'이란 모든 반응이나 다양한 해석을 차단시키는 불구의, 풍요롭지 않은 그런 직접적인 객관성으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읽던 자리로

4)샤를뤼는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나오는 동성연애자의 대표적인 인물로, 당시 시인이자 귀족이며 그 오만함으로 사교계에서 명성이 드높았던 몽테스키외라는 실제 인물에서 차용한 것으로 간주되어 왔다.
->읽던 자리로

5)전기적이고 심리적인 주체로서의 저자의 개념은, 바르트의 후기 문학 실천에 이르면 필사자의 개념으로 대체된다. 저자의 개념이 무엇보다도 실증주의적이고도 합리주의적인 정신에 의거한 것이라면, 필사자는 그 자신의 텍스트를 결코 초월할 수 없는 언술행위 안에서만 자신을 소모하는 자이다. 원래 프랑스어의 scripteur(라틴어 scriptor)라는 말은 작가, 저자의 동의어로, '글을 쓰다'를 의미하는 scribe(라틴어 scriba)와 구별된다. 그러나 바르트는 어원의 이러한 두 가지 의미를 다 수용하여, 작가란 심리적인 주체가 아닌 선행하는 글쓰기를 베끼며 변형하는 자라는 점에서 이 말을 사용하고 있으며, 따라서 이 글에서는 필사자로 옮기고자한다. 또 쓰기를 실천하는 자로서의 필사자는 말하는 자, 즉 화자(locuteur)와 대립된다.
->읽던 자리로

6)수행동사는 명령하다, 선언하다, 약속하다라는 동사처럼 말하는 동시에 하나의 행동을 수행하는 동사를 가리킨다. 수행동사 혹은 언어 수행이라고 불리는 이 언어학 용어는 언어능력에 대립되는 것으로, '구체적인 언어의 실제적인 사용을 의미한다.(...)언어 능력은 추상적이고도 이상적인 것이지만,(...)언어 수행은 구체적이며, 기억의 한계, 고쳐 말하는 것, 부주의 등 언어 이외의 요소에서 오는 불완전한 형식까지도 포함한다.(이정민, 배영남 '언어학 사전', 한신문화사, 1982, 557쪽)
->읽던 자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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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애초에 인터넷을 인터넷 뱅킹이라던가 메일밖에는 사용할 일이
없는 인간이라 ... 그나마 하나있던 홈피마저 그 계정을 맡은 디쟈너가
지워버려서 더더욱 사용할 일은 드물어졌다.(다행히 DB는 남아서 안심^^)

뭐 밥 벌어먹기로 코딩질을 하거나 그럴 때두 약간은 ...

무슨무슨 검색 사이트에 지식검색으로 대부분의 궁금증을 해결하는 사람이 주위에 넘쳐날 때,
싸이질루 하루종일 보내며 답글 날리구 서로서로 엮어 나가는 걸 볼 때,
그냥 다른 사람들은 인터넷이랑 저렇게 지내는구나 하믄서 점점 둔해지는
날 보게 된다. 점점 둔해지나보다.

친구사이트를 들어가보았더니 공개블로그 소스를 사용하여 디쟌한 것이
보기에 참 좋아 그 디쟌을 고대루 받아 올려보았다.
타이틀이미지 파일을 바꾸구, 백그라운드 이미지만 맹글어서 붙히면
되겠구나 하믄서 약간의 궁리중이지만 내가 해봐야 우스워지것지 ^^

암튼 꼼지락꿈지럭 댈 공간이 웹상에 하나 있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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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은 오랜 공백의 적응기간이라 한 주간 20~30분 사이의 유산소운동 후
슈퍼세트를 가벼운 중량으로 돌기루 했다
슈퍼세트는 일정부위에 상관없이 이것저것 휴식시간 없이 쭉 돌아서
한 세트를 마무리 짓는 걸 말한다.
운동을 한 동안 하지 않았거나 주 2 ~ 3회의 운동시간을 갖는 사람에게 적절하다.
이번 주를 이걸루 마무리하구 담 주부터는 한 달여간은 요런 계획이다.

나는 연관된 동작을 선호하는데 이를테면 등과 이두를 같은 날루 잡는 것과 같이
등운동을 하면서 저절루 웜 업되는 이두를 등운동이 끝난 후 마무리 운동을 하는 것 ...
그딴 걸 말한다.

월 : 유산소 20~30분
가슴(플랫,인클라인 벤치류 2종 3세트 반복수 8~12회, 케이블 크로스 오버 4세트 8~12회, 딥 8~12회)
삼두(트라이셉 프레스다운 3세트 8~12회, 원암 오버헤드 익스텐션 3세트 8~12회)

화 : 유산소 20~30분
복부(크런치 5세트, 시티드 니업 5세트)
다리(스미스 머신 스쿼트 3세트 8~12회, 라잉 레트 컬 3세트 8~12회, 런지 3세트 8~12회)

수: 유산소 20~30분
등(덤벨 로우 3세트 8~12회, 풀 다운 3세트 8~12회)
이두(머신 컬 3세트 8~12회, 시티드 덤벨 컬 3세트 8~12회)

목: 유산소 50~60분
복부(니업류 몇 가지)

금: 유산소 20~30분
어깨(머신 or 덤벨 프레스 3세트 8~12회, 레이즈 3종 3세트 8~12회)
그날따라 그냥 땡기는 것 몇 가지 추가~

토: 유산소 50~60분
복부(니업류 몇 가지)

일: 휴식

뭐 이정도가 될 것 같으다.
유산소운동일이 한 주에 이틀을 차지하는 걸 보면 체중감량에 목표가 있다는 ^^
암튼 이리 적어놓구 보니 정리정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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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없이 고요히 앉아 있자니
하루가 마치 이틀 같구나

만약에 칠십 년을 산다고 하면
곧바로 백사십 년을 사는 셈일세

라고 읊으셨는데 난 어째 이틀이 하루 같은지 ...
고요히 앉아 있는 격이 다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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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더부살이중인 계정인데 ...

왜 뻔하게 내 돈 내구 있는 계정으로 안 옮기는지 ... ㅎㅎ

정리 좀 해볼까 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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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라 못하는 SK 축구팀이랑 마주쳤다는 ...
하긴 못하는 게 걔네탓은 아니지

체력이 이리 떨어졌다는 것이 놀랍지만은 않지만 ... 놀랍지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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