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셉 콘라드가 소설을 쓰지 못하는 시기에 친구에게 보낸 편지

스크랩 2017. 3. 13. 16:22

난 매일 아침 경건한 마음으로 자리에 앉는다네. 그렇게 매일 8시간을 앉아 있지. 그리고 그게 다라네. 그 8시간 동안 고작 세 문장을 쓰고는 이내 절망에 가득 차 책상을 떠나고 말지. 어떤 때는 머리를 벽에 찧고 싶은 욕구를 참느라 마음을 다스리고 자제하는 데 온 힘을 쓴다네. 입에 거품을 물고 비명을 지르고 싶지만 아이가 깰까 두려워, 아내가 놀랄까 두려워 감히 그렇게 하지도 못해. 절망으로 가득 찬 위기가 지나고 나면 몇 시간 동안 꾸벅꾸벅 존다네. 하지만 그럴 때도 쓰지 못한 얘기가 있다는 걸 항상 의식하고 있지. 잠에서 깨면 다시 글을 쓰려 노력하지만 어쩔 수 없이 다시 기진맥진해 침대로 돌아온다네. 날짜는 가는데 아무것도 쓴 게 없어. 밤엔 잠을 자지만 아침에 일어나면 오늘 하루 또 헛된 노력을 해야만 한다는 무력감에 겁이 난다네...


아마도 나는 문체에 대한 모든 감각을 잃어버린 듯해. 그리고 이를 찾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쫓기고 있지. 쓰지 못한 이야기는 내가 보는 것, 내가 말하는 것, 내가 생각하는 것, 내가 읽는 책 한 줄 한 줄마다 스며들어 있어. 난 뇌를 느낄 수 있네. 내 머리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분명히 알 수 있다고. 내 이야기는 마치 유체와 같아 자꾸 내 손에서 빠져나가는 것 같네. 그걸 잡을 수가 없어. 바로 내 머리에 있고 곧 폭발할 것 같지만 한 줌의 물을 쥐듯이 그렇게 낚아챌 수가 없군......


그렇다고 느린 것은 아니라네. 내용물은 속도를 내어 쏟아지지. 나는 언제나 이를 받아 적을 준비가 되어 있네. 하지만 문제는, 너무 자주, 너무 슬픈 일이지만 기다려야만 한다는 것이라네. 문장을, 단어를...... 가장 큰 문제는 전혀 글을 쓰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내 상상력만큼은 아주 활발하다는 걸세. 한 단락, 한 페이지, 하나의 장이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네. 모든 게 거기 있지. 묘사, 대화, 생각, 모든 것이. 단 한 가지 없는 것이라면 바로 확신과 믿음이야. 종이에 내 펜을 가져가게 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확신과 믿음이...... 마음과 심장이 아파올 때까지 책에 대해 생각하네. 그리곤 힘이 다 빠져 침대로 돌아오지. 한 줄도 쓰지 못한 채로 말이야. 지금까지 내가 쏟아부은 노력이라면 응당 산처럼 거대한 명작이 탄생돼야 하지만 그 결과는 초라하기 이를 데 없다네.


- 조셉 콘라드가 소설을 쓰지 못하는 시기에 친구에게 보낸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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